부뚜막

어릴 때 엄마가 음식을 만들 때면 부뚜막에 앉아서 구경을 했습니다. 가끔 간을 맞춘다며 내 입에 조금 집어 넣어주는 음식을 먹는 재미에 저녁준비 시간에 따끈한 부뚜막은 나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엄마는 혼자서 많은 식구들 음식 준비에 정신 없이 바빴습니다. 엄마는 거의 마술 같은 솜씨로 짧은 시간에 반찬을 동시에 서너 가지를 만들었습니다. 왕가마솥에 물을 끓일때면 엄마를 도와 준다며 마르지 않은 소나무 가지를 아궁이에 집어 넣으면 하얀 연기가 나와서 매워서 꼴록 거렸습니다. 그 사이 엄마는 밀가루 반죽을 해서는 물이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솥뚜껑을 열고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때어 (생활의 달인처럼) 능숙하게 수제비를 떠서 넣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엄마가 부엌에서 어린 자식들을 위해서 없는 식재료 가지고도 여러가지 음식을 빨리 만드는 재주를 부렸다는 것을…  김치, 물김치, 김치찌개, 김치무침, 김치 볶금, 김치 빈대떡, 등

어린 것이 엄마를 도와준다고 고사리 손으로 불을 지피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쾌나 좋으셨던 모양입니다. 엄마가 늘 하시던 말, “우리 수민인 귓부랄이 부처 모양으로 잘 생겨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들 잘 살게 해 줄꺼야!”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향한 “너는 부자로 잘 살아라 ” 하는 소원의 말이었습니다.

엄마의 눈에는 빡빡 머리에 기계충 먹은 까만 딱지가 두세개는 항상 붙어있고 누런 코를 흘리며 부뚜막에 앉아 있는 어린 막내 아들이 부처에 비할 만큼 귀하고 눈에 넣어도 안아플 만큼 소중했습니다.  엄마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고단한 삶에서도 늘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나이 60이 넘어 가면서  조금씩 알아 갑니다.  아니 나는 아버지라서 그런 엄마가 느끼는 섬세한 사랑 만큼은 모릅니다. 아들을 아플만큼  짝사랑 하는 엄마의 사랑, 아내를 흘낏쳐다 보면 엄마의 사랑은 글로 표현 할 수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애처롭기는 하지만 그것은 축복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픔은 인생의 깊은 맛을 알게 해주는 하나님의 또 다른 차원의 선물입니다. 사실 아픔이 아니라 어머니들만이 가지는 기쁨이요, 특권입니다. 그래서 아플수록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이 어머니 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에 비교합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비교 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머니가 나를 처다보는 것 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하셨듯이 하나님은 나의 존재만으로도 기뻐 하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 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스바냐 3:17)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사야 49:15-16)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