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라는 젊은 청년이 미국 커티스 음악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었을 때 샌프란시스코의 한국인 교회를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한인 교회에서 애국가라고 부르는 것을 들어보니 곡조가 이별할 때 부르는 슬픈 스코트랜드 민요 였습니다. 그래서 슬픔을 이겨내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애국가 곡조가 절실하다고 생각한 그는 전 세계 40여개 국가를 수집하여 비교 검토해 가며, 5년 만에 애국가를 지었습니다.
한인 선수들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본 국적 선수로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개막식에 가서 한인 선수들을 위한 응원가로 불렀습니다. 그 곡이 오늘날 한국의 애국가 입니다. 1948년 정부수립과 더불어 애국가로 채택되었을 때 안익태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이런 펀지를 섰다고 합니다. “애국가는 제가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나는 다만 하느님이 주신 영감을 대행한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는 가사는 미국의 “God Bless America”라는 형식의 가사와 같습니다.
대한민국은 스스로 세운 나라가 아닙니다. 미국의 도움으로 일본으로부터 독립이 되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건국 초기에 미국 선교사들과 한인 교민들과 한인 교회들의 숨은 공로가 있었습니다. 안익태씨의 말대로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제가 45년전 미국에 와서는 한국 제품들은 GEMCO 라는 싼 물건만 파는 곳에서만 가끔 볼 수 있었습니다. 한인들은 가발, 신발, 가방, 옷, 전자제품, 그리고 후에 자동차까지도 한국 제품을 보면 우선적으로 샀습니다. 한국이 잘 살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25년만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입국 심사 때 나도 모르는 사이 한인들 있는곳에 줄을 섰습니다. 저의 미국 여권을 보더니 외국인들 서는 줄로 가라고 했습니다. 옆에 서있던 젊은 청년이 쫒겨나는 나를 보고 낄낄대고 웃었습니다. 그 때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나마 미국 교포들은 한국에서 사람 대접을 받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족들이 말하길“중국에서는 한국인이라 개무시 당하고, 한국에서는 중국 사람이라고 개무시 당한다.” 고 서글퍼 합니다. 유대인들은 전세계 퍼져있지만 민족이 하나로 뭉칩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한민족이 하나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