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할아버지, 아버지, 큰형 모두 한의사이신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한의학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어린나이에 한자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천자문을 가르치셨지만 저는 한자 배우기를 정말 싫어했습니다. 장난이 짖굿은 아이에게 케케묵은 천자문을 가르치려 했으니 친구들이 놀립니다. 그러니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루황 집우 집주 ..” 제 귀에는“하늘천 따라지 가마솥에 누릉지 박박 긁어서”로만 들릴뿐이었습니다.
여러번 가르치시려고 시도를 하셨지만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막내 아들에게 한의학을 가르치는 것을 아버지가 결국 포기하셨습니다. 그래도 그때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한자 고사성어에 관심이 있는 편입니다. 고사성어를 읽다보면 사람 사는 이치는 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대 서양에서는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동양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하는 순리를 탐구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서양 철학을 대학교에서 조금 배워서인지, 저에게는 서양철학은 한 잔의 와인같은 맛이라면 동양철학은 구수한 한 사발의 숭늉 같은 맛으로 느껴집니다.
고사성어에 만초손겸수익(滿招損 謙受益)이란 말이 있습니다. “가득하면 손해가 오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고대중국 정치를 기록한 유교 경전“서경”에 나오는 글입니다.
가득차면 손해라는 것은 옛날 사람들이 살면서 체험으로 알게 된 진리입니다. 가득차야 좋은데 왜 손해인가? 술도 잔에 가득차야 맛있고, 달도 가득차야 밝습니다. 내가 계획했던 일들 모두 다 이루어져야 좋은 것인데 왜 손해 일까요?
그 이유는 가득차면 겸손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나의 계획대로 된다면 사람은 겸손하지 않게 됩니다. 심한경우 자기가 신이나 된 것 마냥 착각합니다. 독재자들 전부 자기를 신격화 합니다. 그래서 결론은 남들 죽이고 자신도 죽습니다.
구약 성경 지혜서인 잠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씀이 겸손입니다. 거기서부터 지혜가 시작됩니다.
물론 성경에서 말씀하는 지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거늘…”(잠언1:7)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인정해야 내가 인간임을 진실되게 인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한계가 있는 인간임이 깨달아질 때 지혜의 시작이 됩니다. 이것이 안 된 사람은 인간답게 못삽니다.
인간이 신같이 되거나 반대로 짐승같이 되면 불행해집니다. 순리대로 못사니 자신도 불행하고 능력 있을수록 남들을 불행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