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육이오 전쟁 이후 모든것이 파괴된 후에 태어난 저의 어린시절은 무척 가난했습니다. 서울 변두리 가난한 산동네 정릉에서 살았습니다. 윗동네는 청개천 철거민들이 옮겨와 무허가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매일 철거반과 맞서서 죽기 살기로 싸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겨울에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었고, 방학이 끝나면 반에서 연탄 가스로 죽은 아이들이 있었던 시절입니다. 당시 운동화는 상상도 못할 사치품입니다. 신고 다니는 검정 고무신은 바닥에 구멍이 나서 눈녹은 물이 들어와 발가락이 올챙이처럼 탱탱하게 부었습니다. 신발 바닥이 다 닳아 없어지면 새신발을 사주니 고무신 바닥을 계단에 빡빡 문질러 구멍을 크게 만들다가 엄마한테 들켜서 빗자루로 맞은 철없던 때입니다.
할머니를 따라서 미아리 성당 미사를 참석했습니다. 미사가 끝난후 마당에 길게 줄서서 강냉이가루, 밀가루, 우유가루 배급을 받아들고 오는길에, 박하 사탕 하나를 사주어서 그것을 먹는 재미에 일요일이면 할머니를 따라 성당에 다녔습니다. 당시, 미아리 성당은 마루 바닥이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하얀 수건을 머리에 쓴 할머니 옆에서 무릎꿇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미사를 드렸습니다. 어느날 미사가 끝나고 나오니 누군가 나의 새신발을 가져갔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신발이 아까와서 친구들이 안 볼때는 벗어 손에들고 맨발로 걸은적이 더 많던 신발입니다. 결국 마지막 남겨진 다 떨어진 큰 신발을 질질 끌며 울먹이며 집으로 왔습니다. 그때부터 다시는 성당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도둑놈들만 있는 곳이 성당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받았던 마음의 상처는 나의 잠재 의식속에 깊게 남아서, 교회에 대해서도 무척 부정적 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강한 성령의 체험을 하고, 복음에 뜨거운 열정이 있을 때에도 여전히 기존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나에게 있었습니다. 마치 독립군처럼 혼자 전도 다니고, 다운타운 홈레스 음식 나눠주러 다니고 하는 일에 더 열심이던 것은 조직 교회에 대한 강한 부정적인 마음 때문이였던 것을 몇칠 전 기도중에 생생하게 기억하게 하셔서 깨닫고 회개를 했습니다.
도둑놈들만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들도 올 수 있는곳,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의 집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저같은 사람도 예수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목사까지 된 기적의 집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잊어버린 신발의 수천배의 보상을 해 준 것임을 깨닫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마음의 상처, 이것을 성경에서는 “마음의 쓴뿌리”라고 합니다. 순진할 때 받은 상처일수록 더 오래 갑니다. 신발을 훔쳐간 사람은 용서받고 평강을 누리는데, 정작 나는 “마음의 쓴뿌리”로 남아 평생 고생을 합니다. 그래서 밭에 잡초를 제거하듯이 “마음의 쓴뿌리”는 빨리 내가 제거해야 합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히 12:15)